백수가 되고 100일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 (중간에 알바를 하긴 했지만.)
회사를 그만두고 여유가 생기니 주변을 돌아보게 된다. 회사 다닐 때 취미로 하려고 사둔 아직 반도 못 채운 보석십자수를 하거나 그림일기를 쓰겠다고 샀던 아이패드를 꺼내 주섬주섬 충전을 한다. 1일 1팩을 하겠다고 쟁여뒀던 팩도 아침 저녁으로 한다. 사소하지만 만족도가 높은 일들. 

2022년에 들어와서는 다이어리에 매일 일기를 쓰고 있다. 별다른 내용은 없고, 그냥 뭐가 맛있었다. 날씨가 좋았다. 산책을 했다. 낮에 돌아다니는 사람이 이렇게 많다. 이런 정도의 이야기들이다. 회사를 다닐 때는 그런 사소한 것들을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백수가 된 후로 계속 불안했다. 쉬긴 쉬어야겠는데, 쉬어도 되는건가. 경력단절 되면 누가 날 써주려나. 이전 직장에서 나에게 매겨졌던 값어치보다 떨어지면 어떻게 하지. 그런 걱정들. 바로 취업도 안 할 거면서 맨날 걱정만 많았다. 

이제는 조금 안정기에 들어선 것 같다. 어떻게든 살아지겠지. 싶은 생각도 들고, 아직은 부모님의 울타리 안이라 걱정도 좀 덜 되는 것 같기도 하고. 

스스로를 가꾼다는 건 생각보다 사소한 것들을 챙겨주는 것 같다. 사소하지만 귀찮을 수도 있는? 그런 것들. 그래서 조금만 바빠져도 놓치기 쉬운 그런 것들을 채우다 보면 내가 나를 잘 사랑해주고 있구나. 그런 생각이 드는 것 같다. 

백수는 생각보다 바쁘지만, 그 안에 나를 돌볼 시간이 많다. 어차피 곧 다시 일하게 될텐데 그 때까지 나를 잘 가꿔줘서 나중에 힘든 날이 올 때, 이 날들을 돌아보며 힘을 얻을 수 있는 시간이 될 수 있도록 만들어야겠다. 

+ Recent posts